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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생 2막, 늦게 핀 별들의 이야기-한국편]

📑 목차

    인생은 흔히 세 단계로 나뉜다고 합니다. 청년기, 중년기, 그리고 은퇴 이후의 황혼기.

    하지만 역사 속 어떤 인물들은 이 공식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지 않았고, 이미 지나간 시기를 ‘끝’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새로운 도전과 의미를 찾아 인생 2막을 열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우리가 흔히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자신의 길을 새롭게 개척한

    역사 속 인물 세 사람을 만나봅니다.

     

    🌙 늦둥이 과학자의 두 번째 출발 — 홍대용, 40대 후반에 피어난 별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 40대 후반, 지구는 돈다 선언한 실학자”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조선 후기, 18세기 중반. 귀족 중심의 유학 체제가 지배적이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태어난 홍대용은 전통 유학자의 길과는 다른 호기심을 품고 있었죠.

    귀족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기하·수학·천문에 비범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학문 여정은 꽤 늦게 본격화됩니다.

    그가 북경(北京)으로 연행(燕行)을 떠난 시점은 이미 중년으로 접어든 1765년 무렵이었고,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나는 이미 늙었지만, 늦었다는 건 없다.” — 그의 마음 속에 담긴 굳은 결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조선 사회가

    제시하던 인생 공식 — 20대 과거 합격, 관직 진출, 가문 번창 — 이 그에게 더 이상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40대 후반, “지구는 스스로 돈다(地轉說)”라는 파격적 사상까지 품는 이른바 인생 2막을 열게 됩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새 길을 묻다

    북경 연행길은 홍대용에게 단순한 외유(外遊)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서양 학문 수용 현장, 예수회 신부들과의 천문·수리 대화, 청의 흠천감(欽天監)‐서양 천문기구 관측 등은

    그에게 강렬한 자극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우주는 끝이 없고, 지구 하나가 중심일 수 없음”이라는

    무한우주론(無限宇宙論)을 제시했습니다. 
    귀국 후 그의 연구는 본격화됩니다. 그는 자신의 집터에 사설 천문관측소 ‘농수각(籠水閣)’을 설립했고,

    서양식 천문측기 ‘측관의(測管儀)’ 제작에도 도전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상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대표 저작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는 대화체 형식으로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이 맞짱 뜨듯

    천문·지리·인간·사회론을 논합니다.
    그 중에서도 그의 지전설(地轉說)은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 돈다”는 주장은 당시

    동아시아 학계에서 거의 상상되지 않던 개념이었어요.
    이처럼 그는 40대 중후반 이후부터 본격적인 연구와 저작활동을 벌였으며,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시니어 도전’의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

     

                                                        청나라 시대 문인 엄성(嚴誠)이 그린 홍대용

                                                                                                 

    전통과 충돌하고 고단함을 마주하다

    홍대용의 사상은 한 시대를 앞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선다는 것은 언제나 고독한 싸움을 의미했습니다.
    그의 도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8세기 조선은 여전히 성리학적 질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왕부터 양반, 그리고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유교적 위계 속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속에서 ‘이단’은 곧 ‘배척’의 대상이었고, 새로운 생각은 쉽게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홍대용은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 아니다”, “인간과 금수의 본질적 차이는 없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화이(華夷) 구분의 무의미’는 단순히 철학적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조선 사회가 가지고 있던 뿌리 깊은 사대주의,
    즉 ‘우리는 중국의 문화를 모방해야 한다’는 인식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늘 아래 평등하다.”
    그의 이런 믿음은 시대의 한가운데서 너무나 거칠게 들려왔습니다.

    또한 그는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질 사이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인물균(人物均)’ 사상이었습니다.
    이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넘어 자연과 생명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었죠.
    오늘날로 치면 ‘생태 철학’ 혹은 ‘인간 중심주의 비판’에 가까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의 조선에서 이런 사상은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생각은 곧바로 ‘이단’, ‘불경’이라는 낙인을 불러왔습니다.

    홍대용은 현실에서도 수많은 장벽과 부딪혔습니다.
    그가 즐겨 하던 천문 관측과 과학 실험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망원경과 혼천의(渾天儀) 같은 기구를 직접 제작하기 위해서는
    사재(私財)를 털어야 했고, 때로는 가족의 만류를 무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우주를 이해하는 일은 곧 인간의 이치를 아는 일이다.”
    그에게 과학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철학의 통로였습니다.

    1774년, 그는 오랜 세월의 노력 끝에 음보(蔭補)로 관직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재능과 사상을 인정받은 결과라기보다, 가문의 인맥에 의해 얻어진 제한된 자리였습니다.
    이후 1777년 정조가 즉위했을 때도 그는 태인현감, 영천군수 등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중간 관직에 머물렀습니다.
    한때 그는 자신이 개혁의 중심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길 꿈꿨지만, 현실은 그를 권력의 변두리로 밀어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벼슬길의 실패’를 자신의 ‘사상적 성공’으로 바꾸어냈습니다.
    관직의 높낮이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의 움직임을 기록했고,
    수학과 지리학, 천문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조용히 남긴 거대한 흔적

    그가 생전에 큰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상과 저작은 세월이 흐르며 빛을 발했습니다.

    지구 중심 우주관을 넘어선 그의 무한우주론과 지전설은 후대 과학·철학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한국 과학사에서 조명받는 실학자 반열로 자리 잡았습니다.
    충청남도 천안 수신면 수촌마을에는 그의 기념관이 세워졌고, 그의 이름을 딴 과학관·천문행사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후배 학자들인 박지원, 박제가 등이 북학파의 흐름을 타고 조선 사회 개혁을 논하며 그에게 빚졌음을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삶이 “중년 이후에도 완전한 변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나이라는 벽에 굴하지 않고, 학문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무대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에필로그 — 당신도 지금, 다시 출발할 수 있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많은 이들이 은퇴, 쉼, 정체의 단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홍대용은 말했습니다.

     

    “우주는 끝이 없고, 지구 하나가 중심일 수 없다.” 
    지금 당신이 50대, 60대, 70대라 해도 괜찮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건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느냐, 시작의 용기를 내느냐입니다.
    홍대용은 이미 전통과 틀을 넘어 새롭게 질문했고, 나이가 들어서야 자기 길을 찾았습니다.

    당신도 지금 이 순간 ‘인생 2막’의 출발점에 설 수 있어요.
    “나는 오늘도 출발합니다. 다만, 이번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요.”

     

    그러니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시작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