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따라 달리는 노인 — 쩐 반 탄(Trần Văn Thản)의 길 위에서 (시니어 Restart Life 베트남편)
출발의 새벽
2025년 4월의 마지막 주, 응에안성의 한 마을 새벽 공기가 아직 축축할 무렵, 쩐 반 탄(Trần Văn Thản) 씨는
낡은 오토바이에 짐을 실었습니다. 헬멧의 흠집은 오래된 전투 모자처럼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집 앞에 멈춰 서서 마당의 망고나무를 바라봤습니다. 이 나무는 그가 전쟁에서 돌아온 후 직접 심은
것입니다. 나무는 이미 그의 키를 훌쩍 넘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잎사귀가 은은한 소리를 냅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짧은 인사 뒤, 그는 시동을 걸었습니다.
낡은 엔진의 소리가 마을의 적막을 깨뜨렸습니다. 그가 향한 곳은 호치민시. 1,200km 넘는 거리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자신에게 던진 오래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 남겨진 세대의 시간
그의 청년 시절은 총성과 흙먼지로 점철돼 있었습니다.
응에안에서 자란 그는 스무 살 무렵 징집되어 남부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친구 중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는 스물여덟이었고, 어깨에는 세 개의 흉터와 한 줌의 기억만 남았습니다.
평화가 찾아왔지만, 마음속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며 자식들이 자라고,
손주들이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받는 노인’이라 불렀지만, 그는 늘 어딘가 비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밤이면 오래된 군가가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기억 속 전우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멈춰선 곳에서, 나는 얼마나 멀리 왔을까.”
그 질문은 늘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습니다.
떠나기로 한 이유
탄 씨는 어느 날 신문에서 “고령자 도전 캠페인”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은퇴한 노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그날 밤, 묵혀 두었던 군 시절 지도와 오토바이 키를 꺼냈습니다.
한때 전투를 벌였던 남부의 마을들을 표시하며, 그는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이 길을 다시 달려보면,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무모한 생각일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자신을 확인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스무 살의 병사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길 위의 풍경과 내면
출발 첫날, 그는 하루 종일 달렸습니다. 국도 1호선을 따라 이어진 도로는 예상보다 험했습니다.
점심 무렵, 작은 마을에서 국수를 사 먹으며 현지 주민들이 묻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혼자 어디까지 가세요?”
그는 짧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조금 먼 길입니다. 옛 친구들을 만나러요.”
밤이 되자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매일 새벽,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 때마다 마음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길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의 이동이 아니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통로 같았습니다.
비가 오면 도로 옆에 잠시 멈추고, 지붕 밑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때마다 지나가는 청년들이 “할아버지 대단하다”며 엄지를 들어 보였습니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기억도 선명해졌습니다.
전우와 함께 숨어 있던 강가, 피난민들이 줄을 서던 다리, 전쟁의 소음이 가득하던 언덕.
지금은 모두 평온했습니다. 아이들이 뛰놀고, 시장이 들어서 있고, 가게 간판에는 화려한 불빛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이제야 진짜 끝났구나.”
회상의 지점 – 잊지 못한 장소들
길 위에서 그는 몇 번이나 멈춰 섰습니다.
호이안 근처의 작은 묘역에서는 오래된 군용 철모가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그는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있구나.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어.”
그날 밤 그는 도로 옆 허름한 숙소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창문 너머로 파도 소리가 들렸고, 그 속에 섞인 바람은 마치 옛 친구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탄, 아직 살아 있나?”
“응, 아직이야. 아직 가는 중이야.”
그에게 여행은 추억을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추억 속에서 자신을 다시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가 그 시절 품었던 신념과 약속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시간의 빚’이라 불렀습니다.
변화와 깨달음
며칠 후, 호치민시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도시의 불빛은 눈이 시릴 만큼 밝았습니다.
그는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밤하늘에는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대신 수많은 전등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 왔구나.”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은 고요했습니다.
도착의 환희보다, 지나온 길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곧장 옛 전우의 묘역을 찾아갔습니다.
묘비 앞에 서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고, 그의 셔츠 끝이 살짝 흔들렸습니다.
그는 손을 모아 짧게 인사했습니다.
“오랜만이네. 나, 아직 잘 달릴 수 있더라.”
그에게 이 여정은 인생의 결산이 아니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쉼표였습니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았고, 주변의 시선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저 오래된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에필로그 – 남은 길, 그리고 Restart
며칠 후 그는 다시 응에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웃들이 몰려와 “정말 다녀오셨어요?”라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길이 있더군요. 생각보다 길이 좋았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소감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는 긴 시간의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가 다녀온 길은 지도 위의 선 하나로 남겠지만, 그 여정 속에서 그는 세월과 화해하고 자신과 재회한 노인이었습다.
며칠 뒤, 그는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손주들의 발표회를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그의 시선은 무대 위가 아니라 창밖의 먼 산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시작된 길,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 인생.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우리는 다시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삶이 이미 답이 되어주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글은 베트남 응에안성 출신 퇴역 군인 트란 반 탄(Trần Văn Thanh) 씨의 실제 여정을 바탕으로,
VietnamPlus 및 Tuổi Trẻ Online 등에 보도된 내용을 참고하여 재구성했습니다.)